사진이야기

"좀 웃겨 주세요"

나이스가이V 2013. 1. 7. 08:00

지난해 12월29일 두 건의 인터뷰 사진을 맡았습니다.

두 건 모두 새해 첫 1면 사진 후보에 올라 있다며 전날부터 데스크는 은근히 압박을 가했습니다.

 

혁신학교 용인 흥덕고 3학년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전날 인터뷰는 했고 사진만 다시 찍는 것이었지요.

업과 대학 입학을 앞둔 학생 4명을 모으는 게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근데 어떻게 나가는 사진이죠?" 한 학생이 물어왔습니다.

"1면에 나갈 사진이야. 희망적인 내용에 어울리는 밝은 표정의 사진..."

1면에 나간다는 책임지지 못 할 말을 냉큼 내뱉었습니다.

신기해 하는 학생들을 데리고 교실로 올라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시작은 무표정입니다. 슬슬 달궈 가는 것이지요.

 

"조금 더 밝게 해볼까"

"조금 더, 이가 보이도록"

"자~ 활짝 웃자"

"더 웃어야 돼. 그래 좋다. 화~알~짝"

"소리 한 번 질러보자"

"더 세게. 더, 더..."

 

꼭 웃음이어야 희망이 표현되나? 라고 자문하면서 동시에 무표정으로 희망을 표현할 재주가 내겐 없고 간단하게 결론 내립니다.

시간은 쫓기고 머리를 굴려봐도 아이디어는 없고 그저 "웃어라"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같은 날 오후, 마포 성미산 마을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소행주)'303호에 함께 사는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1월1일자 1면 후보 입니다. 함께 활짝 웃는 사진을 찍으려 합니다"

뭐 학생들에게 한 것과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조금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도 읽혔습니다만, 애써 외면합니다. 약해지면 안 되지요.

자리를 잡아주고 셔터를 누릅니다.

"자 웃으세요. 이가 보이도록이요"

"좀 웃겨 주세요" 

당황했습니다.

"아...네..."

가끔 웃어주길 바라는 취재원에게 받는 주문이지만, 이날은 연말이라 그런지 반성을 했습니다.

10년을 넘게 사진을 찍으면서 이런 상황에 단박에 웃길 만한 무언가를 떠올리지 못하고 우물쭈물 한 자신이 영 못마땅했었던 것이지요.

결국 웃기지도 못했고 민망해 하며 다시 웃음을 강요했습니다. 

 

초면에 카메라를 들이미는 기자에게 연기자가 아닌 이상 어찌 웃음이 쉬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측은함 때문이었는지 얼굴이 경직되어 가면서도 장시간 웃어 준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웃지 않을 수 없는 필살기' 몇 종을 준비해야 겠다는 다짐도 해봅니다.

 

웃음 가득한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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