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첫 눈이 내렸습니다. 기상청 기준으로는 첫 눈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국회에 출입하는 사진기자들은 이날 여야의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일정이 바빴습니다. 여야 아침 회의 등 촘촘한 오전 일정을 소화하느라 국회의사당 밖의 날씨에 그리 신경을 쓸 수 없었습니다. 아니, 외면했다는 말이 맞겠네요. 당 대표실과 원내대표실, 회의장을 오가는 사각형의 복도는 꼭 다람쥐 쳇바퀴를 연상케 했지요.
유리문 밖으로 제법 굵은 눈발이 날렸습니다. 회의장으로 향하는 사진기자들은 밖으로 흘낏 눈길 한 번 주고는 걸음을 재촉합니다. 찰라의 시선의 의미를 저는 읽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지나쳤지만 가늘었던 눈발이 굵어지면 그것도 한순간인지라 카메라에 담아야겠다는 욕심이 일어납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만 목격될 수 있는 굵은 눈을 지나쳐 가야하는 마음은 여간 찝찝한 게 아니지요. 물론 부서내 다른 선배나 후배가 눈을 촬영하기 위해 서울시내를 돌고 있었을 텐데도 말이지요.
회의 취재를 마친 사진기자들의 분주한 발걸음에 합류했습니다. 의사당 유리문을 밀고 밖으로 나간 몇몇 사진기자들이 멀찌감치 눈을 치우고 있는 이들을 향해 셔터를 눌렀습니다. 불과 10여분 전의 눈발은 온데간데없고 현관 앞 계단은 그새 깨끗이 치워져 있었지요. 아쉬운 마음에 눌러보는, 때 놓친 셔터 소리가 공허하게 울립니다. 눈 그친 하늘에 시선을 둔 사진기자 동료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눈에 대한 낭만을 잃어버린 저의 삭막한 마음에 조금 위안을 얻었습니다.
사진기자가 그저 ‘첫 눈’을 바라보기만 하면서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날이 올까 싶습니다. 앗긴 낭만을 애꿎은 직업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결국 낭만은 내 안의 문제가 아니냐고.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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