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오리를 수소문했습니다. AI(조류플루엔자)를 매개했다하여 천덕꾸러기가 되기도 한 겨울철샙니다. 새 사진을 찍어본 지 오래고 해마다 변하는 서식지 등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 분야에 전문가인 J일보 A선배께 전화를 했지만, 가창오리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건질 수 없었습니다. 선배의 조언대로 철새가 많이 관찰되는 지역의 철새조망대와 지자체에 문의를 했습니다. 결국 가창오리가 해남 지역에 가장 많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됩니다.
오랜만에 새를 찍으러 가는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해남 지역에서 철새 모니터링하는 분과 연락이 닿았기 때문입니다. 예보와 다르지 않은 날씨와 적절한 렌즈의 선택만이 관건이었지요. 머릿속에선 언제가 보았던 가창오리의 군무 사진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기가 막힌 사진이었지요. ‘환상의 군무’를 찍으리라.
해남 영암호에 도착했습니다. 2차선 도로에 아주 가끔 차량이 지나가고 주위엔 추수가 끝난 논이 넓게 펼쳐져 있었지요. 도시에서 익숙해져 들리지 않던 소음들은 오히려 이런 자연 속에서 그 또렷한 실체를 느끼게 됩니다. 도시 소음이 없는 곳에서 각종 새 소리와 호수의 물결 소리, 바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살면서 문득 그리웠던,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즐겼습니다. 가끔 한 무리의 가창오리들이 날아올라 ‘제대로 찾아 왔구나’하는 확신을 갖게 했습니다. 해가 기우는 방향을 보며 저기로 호수 어딘가에 앉아있을 20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날아오른다면... 생각만으로도 설레었지요.
혹시나 싶어 도움을 주겠다던 철새 모니터 요원분과 통화를 했습니다. 주위의 지형을 물어보시더니 “거긴 금호홉니다.” 엉뚱한 곳에서 삽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해는 기울고 모니터 요원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진짜 영암호. 까치발을 든 요원을 따라 제방 너머를 살짝 엿보았습니다. 긴 섬처럼 가창오리들이 떼 지어 새까맣게 앉아 있었습니다. ‘저게 다 새라니.’
석양과 함께 군무를 찍을 요량으로 붉게 물들고 있는 하늘을 보며 서둘러 호수 반대편으로 넘어갔지요. 그새 ‘저 새들이 날지 않길’ 바라면서. 군무를 보기위해 제방 위에 올라선 사람들과 아이들의 웃음 때문인지 인적에 민감한 가창오리들이 수면 위에서 이는 파도처럼 멀찌감치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머리 위에서 군무를 보는 건 물 건너 간 것이지요. 석양과 각이 완전히 다른 반대쪽 멀리에 다시 검은 띠를 형성하며 앉은 새들. 곧 날이 캄캄해지자 가창오리들이 날아올랐습니다. 육안으로는 멀리서 이는 큰 덩어리의 검은 먼지 같았습니다. 몇 차례 셔터를 눌렀으나 신문에 싣기엔 어둡고 멀었습니다. 다음날 동틀녘 다시 한 번 기회를 노렸지만 또 실패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와서 무겁게 떠나야 했습니다. 이날 아침 군산에서 일정이 있어 더 머물 수 없었지요.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하기에 “가창오리 군무 찍기 힘들다”는 주위의 말들을 애써 무시하고 ‘간절하면 찍는다’는 경험칙에 기댔던 겁니다.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에 마감이라는 의지로 겁 없이 도전했던 것이지요. 새 찍으려다 새됐습니다. ㅎㅎ
들인 시간이 아깝기도 했지만 다음엔 자연의 마음으로 와서 다시 한 번 찍으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볼만한 ‘군무’지, 내몰리고 있는 새들의 입장에서는 처절한 ‘생존’의 몸짓 아니겠습니까.
yoonjoong
'사진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자식같은 사진 (1) | 2014.12.29 |
---|---|
내 멋대로, 2014 내가 만난 사람들 (0) | 2014.12.23 |
시나리오 사과 (0) | 2014.12.15 |
앗긴 낭만에 대하여 (2) | 2014.12.03 |
사진 번뇌 (3) | 2014.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