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 백화산에 안긴 반야사는 일찌감치 해가 졌습니다. 일학 스님과 차담을 나눈 뒤 컴컴해진 대웅전 앞마당으로 나섰습니다. 방금까지 실내조명에 적응된 눈에 서서히 밤하늘의 별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둠에 완전히 눈이 적응될 즈음 하늘 가득한 별들이 쏟아질 듯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그 장면은 “아~”하는 감탄사 이상으로 표현할 길이 없네요.
별들을 한참 올려다보다 초등학생 때 경남 어느 산골로 갔던 교회 수련회를 떠올렸습니다. 그때 밤하늘에 별들은 어린 저를 압도했습니다. 은하수라는 것을 그날 처음 봤습니다. 그날 이후 세뱃돈으로 싸구려 천체망원경을 사서 하늘을 살피곤 했었지요. 템플스테이를 취재하러 온 절간에서 별 때문에 예배당 수련회를 떠올렸다는 게 재밌다 생각했습니다.
앞서 해가 넘어가기 전 서둘러 저녁 공양을 했는데요. 절밥은 참 맛이 있습니다. 절밥 외에는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이 맛을 더하는 양념일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자극적인 맛 하나 없는 사찰음식은 좋은 재료의 맛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새벽 일정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습니다만 평소 퇴근 후 술 한 잔 할 시간이니 잠이 올 리 있겠습니까. 페북과 카톡으로 시간을 때우다 결국 노트북 켜고 이날 찍은 사진을 정리한 뒤 겨우 잠들었습니다. 깊이 잤습니다. 일어날 때 ‘참 잘 잤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1년에 며칠이 될까 묻게 되더군요.
반야사 전경을 찍기 위해 사찰만큼 유명한 삽살개 ‘청산이’를 앞세웠습니다. 전날 들은 템플스테이 관계자의 말대로 “청산아 관음전 가자”했더니 벌떡 일어나 앞서 가더군요. 거리가 벌어지면 저만치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인간에 대한 개의 배려’를 신기하다 했더니 겁이 많아서 그런 것이라며 사찰 관계자는 기밀을 폭로했습니다.
계곡 물소리와 안개와 짙어진 단풍과 사찰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걱정과 근심이 순간 사라지면서 마음에 평안이 찾아들 수밖에 없는 풍광 앞에서 저는 오히려 사진에 대한 더 커지는 압박을 느꼈습니다. 오감으로 느낀 것을 시각적으로 풀어내야 한다는 것은 고통스런 과제입니다. 저 때문에 아침밥도 굶은 ‘청산이’는 이 좋은 곳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안타까운 인간 하나를 위로하듯 두 시간여 제 곁을 지켰습니다. 좋은 풍광 앞에서 ‘사진의 번뇌’에 휩싸이는 것도 ‘업보’이겠거니.
이틀 취재에 일주일 약발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밝은 조명 속에서 별빛을 못 보고, 거친 양념에 음식의 참맛을 모르며, 경쟁과 탐욕에 가까이 있는 행복을 못 느끼는구나.”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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