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등을 넣어둔 개인 장비 캐비닛 앞에 붙어있는 제 사진이 새삼 눈에 들어왔습니다. 2004년 초 태백의 한 탄광의 갱도입구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같은 자리에 적어도 10년 이상은 붙어있었을 텐데 한참 들여다보기는 처음이었지요. 등잔 밑이 어둡고 곁에 있는 사람이 귀한 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요. 캐비닛이 바뀌고 또 다른 공간으로 옮겨질 때도 이 사진은 꼬박꼬박 챙겨 그 자리에 붙였습니다.
A4지에 출력한 사진인데 빛이 많이 바랬습니다. 세월이 한 장의 종이에도 내려앉았습니다. 컬러사진으로 기억하는데 색이 빠져나갔는지 흑백사진으로 보입니다. 옛 기억은 흑백이어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간 한 번도 떠올리지 못했던 그림 속 상황이 떠올랐습니다. 갱도 끝 막장까지 내려갔다 막 올라 왔었지요. 저의 안내를 맡아주셨던 생산부장께서 "오랜 세월 광부로 밥벌이를 했는데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없다"고 했지요. 기념사진을 찍어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제 사진을 찍어주겠답니다. 제가 들고 있던 카메라를 건넸고, 생산부장이 서서 찍혔던 바로 그 자리에 제가 섰습니다.
빛바랜 사진 속에 저는 어렸(젊)었군요. ㅠ 호기심도 열정도 컸던 때였겠지요. 자연스레 ‘초심’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되네요. 저 사진을 캐비닛에 붙여놓은 이유 중 ‘초심을 잃지 말자’라는 각오도 있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저의 ‘초심’은 아마도 ‘열심히 해서 인정받자’ 정도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살면서 초심을 들먹일 때 ‘무엇을’이라는 구체적 내용은 없이 막연히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만 해온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지요.
기자 생활의 중간 지점을 지나고 있습니다. 막연하고 구체성이 없는 서른 전후의 ‘초심’보다 그간 나름의 경험과 성찰의 축적 속에서 ‘중심’을 잡을 때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지금 나의 ‘중심’은 무엇인가.’ ‘무엇이 중심이 되어 내 삶의 중심을 잡아야 하나.’ 많은 생각들이 엉겨드네요.
10년 후쯤이면 ‘종심’을 얘기하겠지요. 스스로에 부끄럽지 않은 ‘중심’으로 ‘종심’까지 뚜벅뚜벅 가고 싶습니다. 그 위에 멋진 ‘종심’을 그려봐야겠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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