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할매’의 손을 꼭 붙잡았습니다. 할매는 의젓한 손자를 보듯 흐뭇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웃는 얼굴에 주름이 깊습니다. “할머니 또 올게요. 힘 내세요” 청년이 말했습니다.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요. 참말로 고마워요” 할매가 답합니다. 잡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청년의 웃음이 소리 없는 울음으로 옮아갔습니다. 청년의 눈에 눈물이 맺히자 할매의 눈시울도 금세 붉어졌습니다. 밀양 송전탑 반대 2차 희망버스에 참가한 청년과 송전탑 건설을 막으려 마을입구를 지키는 할매. 두 사람 사이의 작별인사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희망버스를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한다면 바로 이 장면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떠나는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마을 어르신들의 인사는 무슨 의식처럼 길게 이어졌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손을 흔들며 연방 눈물을 찍어 냈습니다. 지난밤 비닐집 찬 바닥에서 춥고 불편한 잠을 청했던 손님들에 대한 미안함과 먼 길 마다않고 찾아와 준 것에 대한 고마움, 떠나고 난 뒤에 찾아올 허전함도 묻어났습니다. 희망버스는 어른신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었습니다. 어르신들에게 송전탑 건설만큼 두려운 건 무관심과 외면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어붙은 밀양 땅에 따스한 '연대의 온기'를 불어 넣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이틀 간의 일정을 마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일부 정치인과 언론이 외부세력이라 부르던 이들에게서 읽어낸 것은 어떤 사상도 이념도 아닌 아픔을 공유하는 능력과 인권에 대한 짙은 감수성이었습니다.
'서울 전기 자급률 3%' 문구를 밀양 여수마을 입구에서 봤습니다. 도시에서 쓸 전기 때문에 촌로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고 있는 것이지요. 밀양 출장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쓰지 않는 전기 코드를 뽑고 불필요하게 켜진 불을 껐습니다. 불야성의 서울에서 문득문득 밀양 할매들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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