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반복되는 취재를 가는 길엔 보통 ‘뭐 좀 다른 거 없을까?’ 생각합니다. 이 생각조차도 버릇처럼 반복되어 온 탓에 딱히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드믑니다. ‘뭐 별거 있겠어?’하고 말지요. 나름의 경험으로 머릿속에 많은 그림을 그려보지만 대게 현장 상황은 전혀 다르게 전개되기 일쑤입니다. 만약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상에 가까운 사진을 매번 찍을 수 있다면 카메라를 놓고 점집을 차려야지요. ^^
오랜만에 여고 졸업식을 찍었습니다. 졸업장 수여 순서가 되자, 한 명씩 호명된 졸업생들이 단상 중앙에서 졸업장을 받아들고 자리로 걸어갑니다. 단상을 내려가는 계단 앞에 선 담임선생님이 일일이 축하와 작별의 인사를 건네는 식이었습니다. 학생들이 팔을 벌리고 선생님에게 달려가 안고, 단체로 거수경례를 하고, 하트를 그리고, 큰절을 올리면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유쾌하면서도 뭉클한 모습이었지요. ‘오늘 사진은 이거다.’ 바랐던 ‘다른 것’은 머리가 아니라 현장에서 찾아지기 마련이지요.
찍은 사진을 골라내다가 느닷없이 ‘밀가루 사진을 본 지 참 오래다’ 싶었습니다. 한때 중학교나 고등학교 졸업식 취재를 갈 때면 밀가루와 계란을 뒤집어쓰고, 찢어진 교복이 너덜거리는 모습을 찾으려 애썼지요. 일부의 모습이었지만 졸업 취재사진의 ‘최고봉’처럼 여겨졌던 때였습니다. 쉽게 찍을 수 있는 사진도 아니어서 타사 지면에 이런 사진이 먼저 나면 ‘우리는 왜 이런 거 못 찍나?’ 반성모드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졸업식이 열리는 수많은 학교를 두고 어느 학교가 밀가루와 계란의 등장 가능성이 높을까를 가늠해보기도 했던 기억입니다. 취재협조를 얻어 간 학교에서 ‘밀가루 졸업식’ 사진이라도 찍게 되면 “서울시내 한 고등학교에서...”로 시작하는 학교이름 뺀 친절한(?) 사진설명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진들이 매체에 빈번하게 등장하자, 학교 측에서도 단속하려 애를 썼지요. 검색해보니 ‘찢어진 교복과 밀가루'는 일제강점기 일본식 교복에 대한 저항이라는 설이 있더군요. 한때 유행하던 이런 행위들이 지금은 폭행죄로 처벌이 가능하다니 쉽게 실행에 옮길 일이 아니지요. '밀가루 사진'이 눈에 띄지 않는 이유입니다.
이날 졸업식 사진을 찍으며 졸업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생각했습니다. 문득 눈치 챈 이런 새삼스런 사실이 세월의 흐름을, 세상의 변화를, 연차가 꽤 됐음을 또렷이 느끼게 합니다.
금주의 B컷(2018.2.10일자)-“광준쌤, 감사합니다”
서울문영여고 3학년 덕반 김예지 학생이 졸업장을 들고 두 팔을 벌린 채 담임 선생님 이광준 교사에게 달려갑니다. 학창시절 마지막 어리광인 양 선생님을 와락 끌어안고 매달립니다. “쌤~, 감사합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약속해 한 송이씩 준비한 종이꽃을 내밉니다. 예지 학생의 웃는 얼굴에서 당장 입시의 무게를 벗어난 후련함과 새롭게 펼쳐질 내일에 대한 설렘을 봅니다. 다시 오지 않을 여고시절에 대한 아쉬움과 꿈을 찾아 각자의 길을 떠나는 친구들과의 이별의 서운함이 그 위로 포개져 보였습니다. 제자를 떠나보내는 선생님의 미소도 복잡합니다. 졸업생들은 이제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납니다. 이어지는 청년의 삶이 꽃길이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쩌면 더 아프고 힘든 시대를 건너야 할지 모릅니다. 여고시절의 추억이 삶 속에서 작은 위안이 됐으면 합니다. 졸업 축하합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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