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사진 기다리고 있다"

나이스가이V 2018. 3. 2. 02:22

봄 사진을 찍으러 남도로 향하는 걸음은 가벼웠지요. 전날 숙취로 내내 졸면서도 차창 밖으로 흐르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풍광이 좋았습니다. 계획대로 되면 더없이 흐뭇한 출장이겠거니 했지요.

 

순천의 한 사찰에 가장 먼저 봄소식을 알린다는 홍매화를 담는 것이 첫 계획. 전남으로 들어서자 빗발이 굵어지고 바람이 강해졌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붉게 피었을 꽃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사찰엔 인적이 없었습니다. 홍매화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붉게 흐드러졌어야 할 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나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내 수두룩한 나무엔 작은 꽃도 달리지 않았지요. 언제 꽃이 될까 싶은 꽃눈만 가지 위에 달렸습니다. 당황했습니다. ‘꽃이 폈다는 걸 의심하지 않고 왔기 때문입니다.

 

즉시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멀지 않은 광양 매화마을로 향했습니다. 매화마을 내 정보센터에 전화해 확인해보았습니다. “아직 피지 않았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말을 듣고도 그래도 어딘가 햇빛이 잘 들고, 질 좋은 토양에 자란 한두 그루쯤 꽃을 피우지 않았을까.’ ‘그 많은 매화나무 중 하나쯤 삐딱하게 서둘러 피지 않았겠나.’ 발품을 팔면 건질 수 있다는 최면을 걸었습니다. ‘피지 않았다는 관계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극적으로 발견한 꽃 핀 나무를 이미 본 듯한 희열을 미리 느끼며 흐뭇해했지요.

 

네비가 도착을 알린 매화마을은 잘못 들어왔나싶을 정도로 매화꽃의 하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바람이 거세지자 발품의 의지도 꺾였지요. ‘~, 난 무슨 근거로 꽃이 폈다고 믿고 남도로 왔나?’ 꼼꼼하게 정보를 챙기지 못했던 것을 그제야 후회했습니다.

 

아직 피지 못한 매화 꽃망울을 찍었습니다. 마감할 사진을 찍어야한다는 생각보다 그저 셔터라도 눌러야겠다 싶었던 겁니다. 의욕 없이 자책하며 셔터를 누르고 있을 때 걸려온 데스크의 전화. “사진 기다리고 있다. 쓸 만한 거 있지? 찍은 거 마감해라.” 다정다감한 목소리가 가슴을 바짝 조여왔지요. 급해진 마음에 셔터소리는 요란해졌습니다.

 

 

 

꽃망울에 맺힌 빗방울을 함께 찍었습니다. 마감시간을 훌쩍 넘겨 사진을 전송했습니다. 겨울 가뭄 중에 내린 단비였고 봄을 재촉하는 비라는 의미가 먹혔습니다. 꽃에 멘붕온 저를 계속된 비가 극적으로 건져냈던 것이지요.

 

 

사진기자들은 계절에 민감합니다. 늘 다가오는 계절을 앞서서 찍습니다. 아직 추운데 봄을 찍고, 더위가 물러가기 전에 가을을 찾습니다. 오는 계절을 일찌감치 보여주고, 그 계절의 절정을 찍은 뒤, 서둘러 다음 계절을 찾는 사람들이지요. 계절을 앞서가서 사진을 찍는 것이 세월의 속도를 더 크게 체감케 하는 이유라 생각하니 살짝 억울하군요.

 

사진쟁이의 숙명일지니...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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