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새통이었습니다. 소치동계올림픽 선수단이 입국하던 지난 25일 인천공항이 그랬습니다. 선수단의 모습은 오후 4시쯤이나 볼 수 있지만 취재진은 새벽부터 명함을 붙이고 사다리 가져다 놓고 트라이포드를 세웠습니다. 취재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자리 잡기다 보니 치열합니다. 곳곳에서 승강이가 벌어집니다. 고성이 오가기도 하지만 워낙 익숙한 광경이라 제가 당사자가 아닌 이상 신경 쓰지 않습니다. 시간이 다가오자 수백 명의 취재진이 입국장을 바라보며 2층까지 진을 쳤습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취재진이 정작 소치에는 가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차려진 밥상에 수저는 들지 못하고, 물 귀한 곳에서 다투어 설거지를 하려는 심정이 조금 씁쓸했습니다.
선수단을 태운 항공기가 도착할 때쯤 취재진보다 더 많은 수의 환영 인파들이 입국장을 둘러쌌습니다. 입국장 유리문 틈으로 선수들이 보이자, 누군가 “나온다. 나온다~” 외쳤고, 기다림에 지쳐 앉은 취재진이 빨리 돌린 영상같은 민첩함으로 사다리에 오르는 등 자세를 잡습니다. 보인다고 금세 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제 경험으로 보통 이런 ‘양치기 소년’의 “나온다” 외침이 세 번쯤 반복될 시점이 정작 카메라를 들 때입니다.^^ 문이 열렸고 이규혁과 김연아를 선두로 선수단이 들어옵니다. 꽃목걸이와 초콜릿 메달을 받아 건 선수들이 3열로 취재진 앞에 섭니다. 1열에는 김연아와 이상화가 나란히 섰습니다. 서는 위치도 이미 정해져 있는 겁니다. 플래시가 퍼붓습니다. 와~ 시민들의 환호와 착착착 사진기자들의 셔터소리. 시야가 가린 기자들의 외침, 앵글이 안타까운 기자들의 “여기 봐 주세요” 아우성들. 긴 기다림과 그에 비해 지나치게 짧은 포토타임이 끝나자 선수들은 공항 내에 마련된 해단식장으로 이동합니다. 이때 “김연아~” “연아야~”를 외칩니다. 행여 돌아보면 한 컷이라도 더 찍으려는 절절한 외침이지요.
취재진은 다시 해단식장으로 일제히 뜁니다. 미리 자리를 잡아두었건만 인파의 벽을 뚫지 못할까봐 서두르는 겁니다. 대회 보고와 장관 등 고위관계자들의 환영사가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순서는 기자회견. 시간은 10분, 질문은 다섯 개만 받는다고 사회자의 멘트. 대부분의 사진기자는 긴 기자회견을 싫어하지만, 이날 주어진 시간은 좀 야속해 보이더군요. TV연예프로그램 리포터의 질문, 어느 해설위원의 긴 해설 같은 질문, 선수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 한 방송PD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그마저도 김연아에게 질문이 쏠렸습니다. 대회 기간 중 매체들이 인간 드라마를 써 대던 이규혁, 이상화를 포함해 의미있는 기록을 남긴 선수들이 마이크를 잡을 기회는 없었지요. 기자회견 시간이 길었다면 김연아에 집중된 질문이 분산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도 회의가 들긴 합니다.
서둘러 파한 선수단 해단식을 보며 평창까지 남은 4년 동안, 다시 동계스포츠와 선수에 대한 박한 대접과 무관심을 불길하게 예감했습니다.
여기까지 글을 쓴 뒤, 그날 입국장과 해단식에서 찍었던 사진의 원본을 쭉 훑어보았습니다. 수백 컷 사진의 앵글 속에는 김연아가 중심이었습니다. 저도 별 수 없군요. 민망합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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