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쯤이라고 체감했지만 그보다 좀 더 길었을 지 모르겠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죄어오는 압박에 심장이 쪼그라들고 아마 피가 좀 말랐을 겁니다.
녹조를 찍기 위해 높이 띄워 올린 드론에 배터리가 부족하다는 사인이 떴습니다. 조종기에 연결한 휴대폰 어플이 번쩍이며 요란을 떨었습니다. 당황했습니다. “급하면 홈버튼을 눌러라”는 경험자의 조언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올라가는 속도에 비해 하강 속도는 느린데다, 급한 마음이 더해지니 어찔할 줄 몰랐습니다.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고 드론은 여전히 멀었습니다. 공중에서 곧 터져버리기라도 할 것 같은 긴박함을 이 기계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알리고 있었습니다. 조종기 레버를 쥔 손가락에 힘을 잔뜩 주었습니다. 세게 당기면 빨리 내려올 것도 아닌데 말이지요. 잔여 배터리 5%. 여전히 높이 떠있는 드론.
‘아, 대청호에 수장시키는구나.’
반쯤 포기한 채로 이후 상황에 대해 재빨리 계산했던 것 같습니다. 경고음에 압박이 점점 더 심해졌지만 긴장한 몸은 포기하려는 마음과 달리 끝까지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얕은 물가에라도 떨어지면 수습은 할 수 있으니 끝까지 해보자는 일말의 희망은 마음이 아닌 몸이 주도했습니다.
극적으로 물을 벗어난 드론을 30m쯤 전방의 옥수수밭 위까지 끌고 왔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다 싶던 그때 시동이 멎으며 떨어졌습니다. 정신없이 밭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드론은 풍성하게 자란 옥수수 위에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배터리를 갈아 끼고 다시 시동을 걸어 5m쯤 띄웠습니다.
‘휴~ 뜨는구나.’
옥수수가 충격을 흡수해준 모양입니다. 놀란 가슴을 쓸었습니다. 다리가 후덜거렸습니다. 이날은 지난 몇 달 해외 원정수리를 받고 돌아온 드론의 첫 비행 날이었지요.
'두 번 실수는 없다'며 단단히 별렀더니 다음날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잠깐 비가 그친 동안 드론의 시동을 거는데 반응이 없습니다. 이번엔 조종기 배터리 방전이라 생각해 인근 면사무소로 가서 급히 충전을 했습니다. 여전히 시동은 걸리지 않고 "삐익삐익" 소리내는 조종기. 가만보니 드론 기체 조종기와 똑같이 생긴 여분의 카메라용 조종기를 들고 시동을 걸고 있었던 겁니다. 조종기 외부에 구별을 위한 표시가 돼 있었고 늘 이걸 보고 조종기를 손에 쥐었지만, 뭐가 씐 것처럼 못 봤던 겁니다. 원인을 뒤늦게 찾아내자 다시 내리는 비. 한 번 꼬인 스텝은 풀릴 줄 모릅니다.
돌이켜보면 2년 전 드론이 처음 들어왔을 때 “버드아이” "사진과 사고의 확장" 운운하며 예찬하기도 했었지요. 정이 다 떨어졌습니다.
‘나는 드론을 조종했고, 이 기계는 나를 조롱했다’는 문장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드론에 대고 욕을 했습니다. 화가 차올라 드론에 대고 성질을 부렸지만 기계 앞에 ‘버벅’대는 제 스스로에 보낸 짜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날 사드 환경영향평가 취재차 성주를 다녀오는 길에 다시 대청호에 들렀습니다. 배터리 용량을 확인 또 확인하고 드론을 올렸습니다. 기체를 띄우는 동시에 추락이 걱정됐고 배터리 수치가 줄어드는 것을 보며 조급해지고 손엔 힘이 들어가고 조종기 셔터를 쫓기듯 누르고... 다양한 사진 찍기란 애초에 불가능했습니다. 배터리가 60%대로 떨어지자 벌써 손가락은 레버를 아래로 당기고 있었습니다.
무탈하게 발 앞에 내려앉은 드론. 참 고마웠습니다.
어제 상기된 채 욕하던 그 드론을 보며 오늘은 안도의 미소를 날렸습니다.
여기저기서 '4차 산업혁명'이라며 난리지요. 이 혁명을 이끄는 한 축에 로봇도 있더군요. 저는 로봇(드론)에 이미 노예가 돼버린 것 같은 심히 '꿀꿀한' 기분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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