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나선 지방 출장이 의욕을 부릅니다. ‘1타3피!’ 한 번 나서서 3건을 처리하겠다는 것이지요. 회사 주변만 오가다 서울을 벗어나서 좋습니다. 그렇다고 들뜨고 신나고 그런 건 아닙니다. 일이니까요.
2박3일 일정을 짰습니다. 이틀째 경남 김해 취재가 메인, 앞뒤로 한 건씩의 사진취재를 엮었습니다. 김해로 가는 길에 경북 영주를 들러 한 건을 처리했습니다. 그날 저녁과 다음날엔 김해에서 예정된 사진을 찍었습니다. 마지막 ‘3피’째 변수가 생겼습니다. 서울 가며 가까운 함안에서 해바라기를 찍을 계획이었는데 ‘아직 이르다’더군요. 망설였습니다. 확실히 펴 있는 해남을 가야하나.
이틀째 일정을 마치고 전남 해남으로 달렸습니다. 시원하게 펼쳐진 해바라기를 한 번 (찍어)보고 싶다는 애초의 생각을 떨치지 못했고, 1타3피를 지켜내고 싶었지요.
해남 가까이 강진쯤 이르렀을 때 부장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태풍이 북상한다니 해바라기 사진은 쓸 것 같지 않다는 게 말씀의 요지였지요. 다음날 아침에 날씨를 보며 판단하겠다며 전화를 끊었고, 기상청 예보가 자주 그랬듯 크게 빗나가기를 기대했습니다.
해남 마산면의 해바라기 농장. 하늘엔 짙은 먹구름, 바람이 조금 불고 비가 살짝 내렸습니다. 거친 비바람이 불었다면 목포의 항구에라도 가볼까 했습니다. 태풍이 온 것도 안 온 것도 아닌 어정쩡한 바람과 비에 오도 가도 못한 채 해바라기를 망연히 바라봤습니다. 어쩌나.
비 그친 틈을 타 비장의 드론을 띄워 사진 몇 컷을 찍다가 ‘역시 이건 아니다’ 싶었지요. 태풍을 앞두고 꽃 사진은 ‘좀 그렇다’는 건 누가 맨 처음 판단해 답처럼 만들어놓았을까 궁금했습니다.
아직 먼 바다를 지나는 태풍이 일으키는 작은 바람과 보슬비 같은 장맛비를 해바라기와 엮어보기로 했습니다. 좀 더 큰 바람과 비를 바라면서 말이지요. ‘해바라기에서 태풍을 느끼게 하는 참신한 사진도 찍을 수 있으리.’ 기어이 정신승리의 경지에 이르렀지요.
마지막 건으로 어떻게든 출장의 완성을 이뤄보려 했지만, 지면게재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허다한 일이지만, 찍었으되 흔적 없는 사진을 남겨야겠기에. 그곳에 내가 있었고 사진을 찍었다는 증거 또한 남겨야겠기에.
블로그가 있어 참 다행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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