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옛 사진과 영상들이 꺼내져 수시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대세를 거스를 수 없어 저도 옛 자료를 뒤지다 지난 2012년 18대 대선 때 ‘계간 사진기자’ 기고용으로 썼던 취재기를 찾았습니다.
취재기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대선 후보 단일화 신경전 끝에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사퇴를 선언했다. 목소리는 몹시 떨렸고 캠프를 떠나며 눈물을 글썽였다. 안 후보의 전담 마크맨으로 두 달여 쫓아다녔던 나는 허탈해졌다. 그 여운이 며칠 동안 이어졌다.”
간단한 일기처럼 쓴 취재기는 11월28일부터 기록돼 있었습니다.
D-21.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캠프로 넘어왔다. 오자마자 충남, 전남, 경남, 경북으로 이어지는 강행군이 시작됐다......전담 후보가 달라졌다고 일이 달라질 리 없지만 안 캠프와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선후배들의 환대와 배려에 빠른 적응이 가능했다.”
+아래는 '당시 썼던 블로그 캡처'
지금은 일상이 되어버린 카톡방이 당시 새로운 취재 문화라고 쓰고 있네요. ^^
‘카톡의 위로’라는 메모에는 “......대부분의 선후배들이 지난 총선 이후 대선까지 달려왔다. 긴장이 반복되는 일정에 지치고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일상의 위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대선에는 새로운 위로의 문화가 정착했다. ‘카톡 채팅’이 그것이다. 후보 일정을 공유하는 것이 1차적 목적이지만 하루 일과가 마감될 무렵 어김없이 휴대폰은 “카톡, 카톡”하며 울어댄다. 잡담 속에서 위로의 언어가 떠다닌다. 위로와 격려의 말들 속에서 그날의 피로를 날리고 다음날 하루의 체력을 보충받는 느낌이다......”
D-16. 안철수 후보의 ‘진심캠프’ 해단식.
D-13.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전 후보의 달개비 식당 긴급회동.
이런 고백도 있더군요.
D-8. “.....문 후보의 연설에 마음이 훈훈해 지고 미소도 지어졌다. 대선 후보 마크맨인 사진기자가 적절한 거리와 차가운 시선을 유지할 수 있는가. 기자도 반쯤 캠프사람이 된다고 했던가. 하루 1000컷 이상의 사진과 잘 표현하려는 의지는 대상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조건일까. 표정, 제스처, 목소리 톤 등 세밀한 부분을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지켜보며 진정성을 읽어내는 건 나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D-7. “2012년 12월 12일. 12가 세 번 겹친 날이다. 출근길에 긁적인 메모에는 ‘좋은 사진을 찍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저녁이 되면 그 예감의 정체는 무엇이었다고 쓸 것이다’라고 적었다...... 북한이 광명성 3호 위성을 탑재한 로켓을 쏘아 올렸다. 뉴스에는 온통 북한 로켓 얘기다. 좋은 예감의 정체는 지면이 줄어 취재 부담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여유로운 하루였다.”
D-6. “광주 금남로는 인산인해였다. 후보 도착 전 사회를 보던 000 의원이 “방금 00일보 기자로부터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가 박 후보를 처음으로 앞질렀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단상에서 그 말을 전한 사진기자를 향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대선 유세장에서 사진기자가 박수를 받는 초유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D-5. “......아침부터 세차게 비가 내렸다..... 부산 서면유세에서 문 후보를 근접해 찍었다. 흠뻑 젖어 유세차에 오른 문 후보는 “고성능 마이크로 민폐를 끼쳐 송구스럽다”는 말로 유세를 시작했다. 비 때문인지 겸손하고 배려하는 그의 말이 참 좋다고 느껴졌다...."
D-2. “고생의 끝이 보인다. 초박빙이라는 보도에 결과가 어찌될지 궁금하고 좀 초조해졌다. 후보는 막바지 강행군에 나섰다....”
D-1. “....마지막 유세여서인지 인산인해다. 사진기자들의 딛고 선 사다리 뒤에서 “안 보인다”며 날리는 욕과 아우성이 대단했다. 욕을 버티는 것도 동료들 덕이다. ‘욕도 나누면 N분의 1’이 되는 법.....강추위 속에 후보를 뚫어져라 주시하는 유권자들의 모습에서 그 간절함을 짐작했다.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인파의 규모를 보며 장관이라 생각했다.”
D-day. “.....오후 문 후보가 이긴다는 조사결과를 뒤엎고 박 후보가 앞섰다는 결과가 다시 올라왔다. 6시 출구조사는 박 후보 50.1%, 문 후보 48.9%로 박 후보 당선을 예측했다. ....9시경 ‘박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 된다’는 개표방송 자막이 떴다. ‘이건 아닌데...’하는 표정으로 선후배들이 하나둘씩 당사를 빠져나갔다. 밤12시가 다 되어 당사에 모습을 드러낸 문재인 후보는 “최선을 다했다. 역부족이었다. 패배를 인정한다”고 했다. 누군가 낙선하기 마련인 선거지만 문 후보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후보를 전담했던 마크맨으로 후보에 대한 기대와 애정이 그만큼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과 함께 저장된 한 장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문 후보가 한 유세장에서 꽃으로 장식된 기표 모형을 든 사진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그 꽃은 바로 ‘장미’였습니다. 장미대선을 예견한 것 아니었을까요. 소름 돋지 않습니까. 위에 글에서 대선 당시 ‘12가 세 번 반복되던 날’의 설렘, 즉 '좋은 사진을 찍을 것 같은 예감'이라 썼지요. 이 사진은 바로 그날 찍힌 사진입니다. 제가 5년 뒤의 설렘을 예감했던 걸까요. 다시 한 번 팔에 닭살이 타고 올라옵니다. ㅎㅎㅎ
2012년12월12일 충남 서산의 한 재래시장 유세장.
블로그를 쓰고 있는 이 시간 YTN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희생자 유족을 안아주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뭉클합니다.
yoonjoong
'사진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게 위로가 되는 사진 (0) | 2017.06.06 |
---|---|
100만의 인연 (2) | 2017.05.24 |
마네킹...좀 짠한 (0) | 2017.05.03 |
카메라를 내려놓을 용기 (8) | 2017.04.24 |
우병우 퍼포먼스 (0) | 2017.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