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추억 선물'

나이스가이V 2013. 11. 15. 08:00

그가 스튜디오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딱히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봤던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젊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80년대 인기밴드 다섯손가락의 리더 이두헌.

 

제가 10대 초반일 무렵 형이 샀던 것으로 기억되는 다섯손가락의 테이프를 집에만 오면 카세트에 꽂아놓고 반복해 들었습니다. 그가 작사·작곡한 새벽기차’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등이 든 1집과 사랑할 순 없는지’ ‘풍선등이 수록된 하루 서너 번씩, 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모든 노래를 줄줄 외워 불렀습니다. 초등학생이었던 제가 제법 감정까지 넣어 불렀던 것 같습니다. “희미한 어둠을 뚫고 떠나는 새벽기차는 허물어진 내 마음을 함께 실었네. 낯설은 거리에 내려 또다시 외로워지는 알 수 없는 내 마음이여~” “누군가 이 못난 나를 사랑할 순 없는지 서글픈 내 몸짓에 가난한 내 영혼까지~” 제대로 된 사랑과 아픔을 알기엔 한참 모자란 나이에 어찌 이런 가사들이 와 닿았었는지. 생각해보면 살짝 같잖은 모습에 민망한 미소가 지어지지만, 당시엔 이 노래들에 어떤 위안이 있었던 것인지 마음이 차분해졌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30년 가까운 세월을 훌쩍 뛰어 그 노래를 만든 이두헌을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만났습니다. 그가 20살에 데뷔 했다고 했으니 따져보면 저와 나이차가 10살도 안 나더군요. 어린 기억 속에 있던 그라 같은 세월을 지나왔으면서도 나이 지긋한 모습을 은연중에 그리고 있었던 듯합니다. 밑도 끝도 없이 전혀 나이 드시지 않았다라고 입을 뗀 뒤 어릴 적에 참 좋아했다”며 고백했습니다. 분위기가 아늑해 졌습니다. ‘좀 특별하게 찍어야 하는데····’라 생각했지만 의자 대신 바닥에 앉히는 게 전부였지요. 의자에 기댄 모습에서 옛 생각에 잠긴 저를 찾으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설레었습니다. 과거로 여행하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는 지난 6년 동안 전국 곳곳을 누비며 무료로 마음 음악회를 열고 있습니다. “음악회에 꼭 한 번 놀러오라며 내미는 손을 꼬~옥 잡았습니다. 묻혀있던 추억을 꺼내준 그의 등장은 선물이었습니다. 저의 답례 선물은 사진 말고 뭐 있겠습니까. 골라낸 몇 장의 사진 파일을 그와 친하게 지내는 회사 선배를 통해 전했습니다.

 

제 주변에 몇몇은 비 오는 수요일이면 괜히 들떠서 사람을 모으고 술자리를 급히 조직하곤 합니다. ‘다섯손가락의 노래는 지금도 그렇게 우리 안에 녹아 있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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