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을 통해 찍은 인물사진의 경우 특종일 확률이 큽니다. 연출사진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제가 입사했던 2000년,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이 은신 중이던 서울 논현동 자택 담장 위에서 사진기자들은 24시간 3교대를 해가며 집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저런 취재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수습이던 제겐 담벼락 취재의 기회가 오지 않았지만 연일 초췌해져가는 선배들을 보며 마음이 짠했던 기억이 납니다. 몇 날 며칠을 기다려도 볼 수 없었던 린다 김을 당시 대한매일(현 서울신문)의 도준석기자가 현장에 투입되자마자 찍었습니다. 창 속에서 어딘가로 다급한 전화를 하는 린다 김의 모습이 처음으로 포착됐습니다. 모든 신문과 방송이 이 사진을 받아썼습니다. 확실한 특종이지요. 이 사진은 그해 대한민국 내에서 보도사진에 줄 수 있는 최고상을 모조리 휩쓸었습니다. 앞서 1996년에는 중앙일보 김경빈기자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 입원중인 경찰병원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장면을 찍어 그해 대상을 수상하였지요. 두 사진 모두 특종이었고 당해 한국보도사진전 대상작이며 무엇보다 유리창을 통해 찍은 사진이었지요.
최근 보도사진 바닥에서 논란이 된 두 장의 사진이 공교롭게도 유리창을 통해 찍은 사진들입니다. 하나는 칩거 중인 이완구 총리 후보자를 찍은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재판을 받기 위해 들어서는 호송버스에 탄 모습입니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 사진의 경우 ‘집 안에서 잠옷 바람의 이 후보자 모습을 찍고 보도할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이었지요. 청문회 후 사나흘 간의 칩거에 굳이 사적 공간에까지 카메라를 들이댔어야 하냐는 겁니다. 취재윤리 측면이 강조된 것이지요. 반면 총리 인준 처리를 앞둔 후보자는 이슈 속의 공인이고 그의 행적은 언론의 관심사요, 이에 대한 추적과 보도는 당연한 취재행위라는 입장도 있습니다. 국민의 알권리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얘깁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호송버스 안 사진 논란은 이렇습니다. 제가 속한 사진기자협회에서는 호송차량 내 모습이나 구치감으로 들어서는 모습 등 수의를 입은 모습 촬영을 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날 저도 현장에 있었습니다. 가끔 규정보다는 현장 분위기가 우선하는 경우가 있지요. 방송 카메라기자들이 구치감 내 모습을 찍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고 사진기자들 역시 이런 분위기에 휩쓸립니다. 안이 보이지 않는 호송버스 유리창에 카메라를 바짝 붙이고 셔터를 누르며 플래시를 터뜨립니다. 어디에 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찍다보면 얻어 걸리겠지,하는 심정으로 찍습니다. 저는 찍어도 쓸 수 없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포기를 했습니다만, 마음에 걸렸던 건 이날 재판받기 위해 조 전 부사장과 버스에 동승한 이들입니다.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을 겁니다. 여하튼 모 신문 후배기자의 카메라에 조 전 부사장의 모습이 찍혔고 다음날 소속 신문에 게재됐습니다. 그 이유로 협회내 징계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두 사진의 논란을 보고 든 생각입니다. 대게 논란이 되는 것은 명쾌한 답도 없더군요. 다만 국민의 관심과 알권리를 내세우며 언론이 필요이상으로 과도하게 경쟁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네요. 언론이 독자나 국민의 정서와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어쨌든 사진기자가 ‘유리창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것만은 변하지 않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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